Tuesday, September 20, 2011

외유내강-外柔內剛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란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겐 부드럽지만, 자신에겐 엄격하단 얘기다.
겉으론 부드러워보이는 사람이더라도, 속에는 한 칼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하란 말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 이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누리면서 실리는 실리대로 챙기는 바람직한 
성격으로 간주되곤 한다.

하지만 이게 정말 좋은 것일까?
과연 자신에게 엄격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부드러운게 자연스러운 것인가?

이들은 보통 가면이 두꺼운 사람들이다.
교묘하게 자신의 반응을 잘 조절해서,
다른 이들에게 부드러운 인상을 주기 위해 쉼없이 노력한다는 말이다.
즉, 끊임없이 계산하면서 사람과 세상을 대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들은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이다.
겉으론 허허 그러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흔히 판단의 형태로 우월감을 얻는다.
자신의 절제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제단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판단은 흔히,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좋은 수단의 하나이다.
그냥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니 남이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상처입기 쉬운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의 하나이다.
한수 아래로 타인을 판단하게 되면,
타인의 어떤 행동이나 말도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계산에 의해 움직이게 되면, 점점 자신의 감정에 무뎌지게 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스스로도 자신이 어떤 느낌을 가지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감정의 마비 상태에서 우월감을 얻는다.
감정을 완전히 극복(?)했다는 어이없는 착각에 빠져서,
감정에 휘둘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음이 있기에 양이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이다.
그러하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감정을 무디게 만들면,
그만큼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능력까지 무뎌지는 법이다.
가면을 두껍게 하고, 방어막을 더 쌓을수록, 더욱 무덤덤해지고 고독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억눌린 감정들은 결코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으니,
주기적인 우울증, 까닭없는 분노 등에 시달리기 쉽다.
무미건조한 인생, 기쁨도, 슬픔도, 특별히 좋을 것도, 화낼 것도 없는 삶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부정적인 감정이 왜 일어나는가를 살펴서 자신의 어떤 모난 부분이 그것을 일으키는 가를 인식하는 것이지, 방어막을 더욱 두껍게 쌓아올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두꺼워진 방어막 자체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 생명빛



외유내강의 반대로 내유외강(內柔外剛)이란 말이 있다.
안은 부드러운데 밖은 엄하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형은 흔히 군대나 직장 상사의 바람직한 유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물론 공적인 관계에서는 바람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적인 관계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으면 참 피곤해진다.

경상도식 아버지를 생각해보자.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가슴속에선 넘쳐흐르지만,
표현되는 것은 "밥 먹었냐?" 등 간단간단한 말밖에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누구라도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한두명씩은 있을테니, 잘 이해가 갈 것이다.

이런 이들 역시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감추려고 노력중이다.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표현했을 때 직면할 지도 모를, 타인의 거부와 무관심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때문에 애써 무관심한척, 강한척 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은 어떤 이념에 따라 사회의 개혁을 부르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발견되곤 한다.
패미니스트, 사회주의자, 환경주의자 등 "~주의자"란 말이 붙은 사람들은,
겉으로 강해보여야 하고, 이념에 자신의 행동과 심지어 내면 심리상태까지 맞추어 나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대단히 부드러운 사람들이지만,
이상하게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나 공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무섭고 차갑게 비춰지는 것이다.

과거 운동권에 있었던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
때로 그들은 자신의 이런 고통을 외부로 투사하여, 


외부의 대상을 더욱 맹렬히 공격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상처입기 쉬운 자신 주위에 벽을 쌓아올리는 것에 불과하니,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그들의 공격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도와달라는 외침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가면 없이, 방어막 없이, 성벽 없이,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인 것이다.

겉도 유하고 속도 유한 사람, 겉도 강하고 속도 강한 사람.
두 유형은 자신의 기질에 따라 결정될 것이고,


한 사람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 유할 수도 강할 수도 있으니,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둘 모두,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같다.





고통이 느껴지면 방어막을 쌓거나 외부로 관심을 돌리는 대신,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모난 부분이 이런 고통을 불러오는가를 살피고,
그것을 인식해 나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내면의 길이요, 근본적인 길이 아닐까?






20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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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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